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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유적

불국사,석굴암의 옛모습

 

1909년경 정면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모습

불국사는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목조 건물이 모두 불타고, 1604년부터 150년간에 걸쳐

조금씩 복고와 중수가 계속되었지만 조선 말기에 이르서서는 퇴락의 길을 걸었다

1923년경부터 일본인들에 의하여 여러 차례 정비가 되었다

일제 초기의 대웅전의 모습을 보는 마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 대웅전의 문짝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다

 

1924년경 대웅전 수리 광경으로서 북서쪽에서 본 모습이다

지붕과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고, 보수를 위해 기대어 놓은 사다리가 보인다

 

1922년경 일제가 석축 등을 복원한 당시의 전경. 당시에도 좌경루는 복원되지 않았다

 

1919년의 불국사 전경. 청운교, 백운교의 허물어져 있는 모습이 생생하다

 

1919년의 불국사 전경

자하문의 지붕은 허물어지고, 청운교, 백운교는 겨우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쪽에서 바라본 1914년의 불국사 전경. 오른쪽에 다보탑이 보인다

 

서쪽에서 바라본 1914년의 불국사 전경

석축은 몹시 허물어진 상태이고, 석단 앞에는 밭을 일군 모습이 보인다

 

 

1919년의 불국사

 맨 뒤로 보이는 것이 극락전이고 그 왼쪽이 요사채이다 앞쪽은 칠보교, 연화교



석굴암의 옛모습





2007-09-17일 부산일보 기사 :

1913년 석굴암을 처음 해체·복원하는 과정을 찍은 유리원판 사진 12점(사진)을 성균관대박물관이 공개했다

석굴암 입구 좌우에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 한 쌍이 지금처럼 일렬로 나란한 게 아니라

90도 각도로 꺾어져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과 본존불을 제외한 모든 초석이 교체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진이다 (이상헌기자)

또 다른 자료 : 일제 36년을 통하여 일제가 석굴에 남긴 유산이란 2m의 콘크리트벽과

그리고 끊임없이 생기는 습기와 프른 이끼, 그리고 가공할 흉기, 증기세척 보일러 뿐이었다

석굴의 개수공사는 1200년을 유지해온 석굴에 치명상만 주었는데,

특히 외형상에도 무수한 변조가 가해져 야나기 무네요시는 장문의 '석불사의 조각에 관하여'라는 글을

예술지 1919년 6월호에 발표했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것(보수된 돌담)을 보았을 때 그 몰취미한 행위에 크게 놀랐다
무슨 이유가 있다고 거의 터널의 입구로 잘못 보는 그러한 공사를 하였을까

나는 이것을 석불사의 수리가 아니라 새로운 파손행위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는 비록 과학적인 수리는 했다하더라도 아무 예술적 수리는 알지 못한 것 같다
될수만 있다면 저 돌담을 파괴해서 그 수리는 조선인 자신에게 맡기고 싶다

석불사는 다행히도 왜구의 화를 면했다 그러나 수리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모욕을 당했다

만약 그 수리가 단순히 천장을 덮고 각 돌담의 위치를 제자리에 갖추는 데

그쳤더라명 얼마나 아름답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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