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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유적

흥덕왕릉

 

 

 

 

 

 

 

2011.8.7


경주에는 신라 왕릉으로 알려진 많은 무덤들이 있지만

그 무덤의 실제 주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무열왕릉과 흥덕왕릉 둘 뿐이다

괘릉과 선덕여왕릉도 거의 확실하다고 하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에 의한 것일 뿐

흥덕왕릉은 누구의 왕릉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 외에도 신라 왕릉 가운데 그 규모나 짜임새에 있어 단연 돋보이는 왕릉이다

흥덕왕릉비는 비록 비신과 이수는 사라졌지만 흥덕이라 새긴 비편을 남겼으니 일부나마 자신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인석으로 곱슬머리에 눈이 깊숙하고 코가 우뚝한 서역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의 무인상으로 짐작건대 당시 신라가 당나라뿐만 아니라 먼 서역과도 활발하게 문물교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능의 지름이 20.8m이고 높이는 6m에 이르니 비교적 큰 편에 속하는 왕릉이다

 

무덤의 외부 모습은 비교적 큰 봉토분으로, 무덤 밑둘레를 따라

병풍처럼 다듬은 넓은 돌을 사용하여 무덤 호석을 세웠고 각 탱석에는 방향에 따라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또한 무덤 주변을 따라 돌난간을 세웠으나 난간기둥의 위아래에도 구멍을 뚫어 끼웠던 가로돌은 남아 있지 않다

신라 제42대 왕인 흥덕왕(
826~836 재위)은 본명은 김수종이며 제41대 헌덕왕(41대)의 아우로

애장왕을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웠아버지는 원성왕(38대)의 큰아들인 혜충태자 인겸이며 어머니는 성목태후 김씨이

는 소성왕(39대)의 딸인 장화부인 김씨였으나 즉위 직후에 죽자 정목왕후로 추봉하였다

그의 치적으로는 장보고청해진대사로 삼아 해적의 침입을 막았으며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다 돌아온 김대렴차 종자를 들여오자 지리산에 심게 하여 차 문화를 일으켰다  
그는 11년 동안 죽은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고 죽은 후에도 먼저 죽은 그녀와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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