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27
문무왕 14년(674)부터 왕경의 동궁터로 건설되어진 안압지의 원래 명칭은 월지이다
현재 쓰이는 안압지란 명칭은 신라의 멸망 후 조선시대 왕궁의 모습은 간데없고 오리떼와 기러기떼만 떠 다니는 연못이란 뜻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라 왕궁인 월성(반월성)을 확장하면서 궁을 짓고 인공연못을 조성하게 되었는데 안압지를 조성 당시 신라는 당과의 힘겨운 싸움을 전개중이었다
전쟁 중에 이러한 거대한 토목공사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학계에선 국력에선 비록 당에 뒤질지라도
문화적 역량에서만은 뒤지고 싶지 않은 신라인들의 염원을 담은 공사가 아니었나 추측을 하고 있다
안압지는 삼국통일 후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가 신라의 문화와 융화된 대표작으로 전반적인 개괄적 프랜은 백제식이고
세부적인 사항은 고구려식이라 할 수 있다 연못을 파 신선사상을 나타낸것은 백제의 정림사 궁남지 미륵사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이고
석축호안에선 고구려의 양식을 찾을 수 있다
안압지는 찬란한 통일신라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출발점이자 신라 천년 사직의 종말을 고한 비운의 장소라 할 수도 있다
신라의 마지막왕 56대 경순왕은 고려의 태조를 초청해 이곳 안압지에서 연회를 베풀고 신라를 바침으로서
신라의 천년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왕건이 경순왕의 항복을 받은 후 서라벌에 경주 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림으로써
이후 서라벌이란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이후 경주로 불리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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